하나의 생태계는 어떻게 갈라파고스화 되어 가는가?

1주일간 개최된 devfest.asia 의 행사 중 하나였던 jsconf.asia

올해 처음으로 해외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내돈 70만원(!)을 내가며 참가했다. 24일 play.node 에서 발표를 하고, 저녁에 싱가포르로 넘어가 25일 아침에 도착해서 곧바로 cssconf 를 참석, 이어 26-27일 양일동안은 jsconf 를 참관하고, 다음날 오전에 바로 귀국하는 빡빡한 스케쥴이었다. 이 포스트는 play.node 를 제외한 나머지 두 행사에 대한 리뷰이자, 참석하며 느낀 소회가 될 것이다.

서론: 참석하게 되기까지

올해 9월 JSCON:16 에 React Native in Production 이라는 주제로 발표자로는 처음으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대형(?)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를 생각보다 빠르게 이룰 수 있게 되어 기뻤다. jsconf 와 cssconf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땐 언제고 왜 갑자기 자랑질이냐 하는 궁금증이 생길텐데, 그 덕분에 두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었다. 발표를 신청할 때 금전적인 보상이 있을거라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는데, 약간의 사례금이 나온다고 하여, 큰 돈은 아니었지만 의미있는 방식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돈을 조금 아니 사실 대부분 보태어 컨퍼런스를 참가하기로 했다.

JSCON:16 발표

내가 알기로 jsconf 는 전세계에서 열리고 있는 가장 큰 javascript 컨퍼런스 중 하나다. 이름만 대면 어느나라에서도 알만한 많은 회사 혹은 단체에서 발표자가 모이고, 프론트엔드에서 백엔드까지 다양한 기술을 소개하고 그간의 개발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이번에도 역시 (사실 작년까지는 직접 가보진 못하고 영상으로만 접했지만) 페이스북, 구글, 텐센트, 넷플릭스, npm(!), ARM, Github 등 많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발표자가 모였다.

9월쯤 7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치르고 발권을 한 후, 기대를 갖고 행사를 기다렸다. 드디어 D-DAY!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play.node 에서 발표를 하고, 그 길로 공항길에 올랐다. 저녁 10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오전 6시에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는 잠깐 들러서 짐만 맡기고 바로 컨퍼런스 장소로 향했다. 행사장인 Capitol Theatre 에 도착하니, 시작시간인 9시를 약간 넘어가고 있었다.

본문 시작하기에 앞서 이 포스트에서는 기술적인 내용은 깊이 다루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소회에 가까운 내용이 주가 될 것이다. 기술 관련된 내용은 다른 포스트를 통해 공유하겠다.

CSSCONF

jsconf 를 참석하려다가 덤으로 얻어걸린 놈이 cssconf 다. 딱히 이 행사를 참여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같이 등록할 수 있길래 싸길래 참가한 것 뿐이었다. 덤으로 등록한 행사이긴 했어도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이쪽에 대한 기대가 커졌는데, javascript 는 워낙 대세이기도 하거니와, 내 직업이 이건데 대체로 트렌드는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평소에도 css 라는 스트레스 덩어리 분야가 어떻게 보면 더 어렵고, 또 재밌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에 기대가 조금씩 커져갔다.

멋짐

발표는 9시 부터 저녁 5시 까지 중간중간 쉬는 시간과 함께 진행되었고 오전부터 30분짜리 메인 세션들이 시작, 점심에는 쥬니어 레벨의 15분짜리 발표가 몇개 이어졌다. 이후에는 30분짜리 메인 세션이 다시 이어지고 5시 즈음에서 마무리 지어진다. 이런 것도 있었나 싶은 것들로 부터 알만한 것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발표가 꼬리를 이었다.

flebox, grid 같은 핫한 녀석들이 확실히 주목도가 높았던 것 같고, ligature 라는 듣도 보도 못한 녀석들이 나오는가 하면 svg animations 에 관한 책을 쓴 csstricks(!) 의 저자의 발표라던가, CSS4 Color 같은 아직 스펙 레벨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내용들도 소개했다. 아무래도 css 가 상대적으로 좁은 분야이다 보니 jsconf 인지 cssconf 인지 모를내용도 상당수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http/2 는 둘다 아닌데?

첫 발표가 grid-layout 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직까지 브라우저에 많이 보급된 스펙은 아니다. MS가 만들어서 안도와주는듯 그러니까 평소에 잘했어야지 flexbox 에서 부족한 내용들을 보충하는 것으로 보였고, 레이아웃을 만들때 상당히 유용한 기능으로 여러 메이저 브라우저에 적용된다면 프론트엔드 개발자의 삽질 일을 많이 줄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용도 그렇지만, 발표자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았다.

많이 사용해주세요. 개발자가 많이 사용해주셔야 브라우저 밴더들도 의욕적으로 적용할 것입니다.

뜨끔했다.

발표 내용부터 방식까지 전부 완벽했던 Lea Verou 의 CSS Variables

마지막 발표인 CSS Variables a.k.a Custom Properties 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발표자는 W3C 에서 활동하고 있는 Lea Verou 라는 개발자로 발표 내용도 방식도 배울 것이 많았다. 자기가 직접 만든(!) 에디터를 사용하여 물 흐르듯이 발표를 진행했는데, 스펙을 정하는 쪽에서 일하다보니 잘 아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간단한 기능을 사용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키는 걸 보고 있자니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환경과 입장(?)이 부럽기도 했다.

JSCONF

JSCONF 개막

1일차

jsconf 는 cssconf 뒤를 이어 25-26일 양일간 진행되었다. 역시 초보적인 것에서 부터 복잡하고 심오한 것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고, 2일간 진행되었음에도 겹친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이것봐 js 가 짱이야 첫 발표는 Github 에서 Electron 을 만든(!) Cheng Zhao 라는 분의 발표였다. 그 일렉트론 맞다! 이 분이 nw.js 의 코어 개발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인턴때 혼자 시작했다고 한다! Electron 소스 코드의 첫번째 commit 을 한 사람이 이 분이다! 날 가져요 엉엉 중국분이라는 것도 놀랐고, 그 방대한 코드라인을 많은 부분을 한 사람이 커버하고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인턴으로 nw.js 를 만들고, electron 까지 사실상 혼자 하신 괴수같은 분

20만줄을 혼자 작성한 분의 위엄

Tessel 이라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발표도 재밌었고, MS 의 기승전 VS Code 또한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Rats of the Maze 라는 발표는 랜덤하게 미로를 제네레이트하는 것에서 적과 아군 AI 까지 모두 자바스크립트로 만드시는 기염을 토하셨다. 발표도 컨셉을 확실히 잡고 게임 프롤로그 처럼 진행해서 오글거렸다 재밌었다.

뭐 이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 다시 목차를 보니, 중간중간 기억이 없는 발표들이 있는데 나는 그때 뭘 한거지??

2일차

어제도 그랬지만, 첫 발표는 Mind-blowing 이라는 영어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GPU.js 라는 발표였는데, "어떻게 js 가 browser 에서 gpu 를 직접 접근하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아주 황당하고도 멋진 방식으로 해결했다. 당연히 js 는 직접 gpu 를 접근해서 제어 하거나 계산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를테면 array 를 3D 텍스쳐(!) 로 만들어서 계산을 하게 만들었다! 웹의 canvas 요소를 사용해서 gpu 에 계산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는데, 정확하게 이해는 못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약을 하면 이런생각을 하는 건지.. 심지어.. 학생들이었다.

V8 Performance Profiling 발표자

V8 Performance Profiling 도 재밌었는데 Google V8 과 Node.js Contributor 이기도 하신 분이 나타나 assembler 코드 레벨의 발표를 해주셨다. js 는 object property 검색이 스펙이 상당히 복잡하다. 따라서 V8 의 목표 또한 이를 어떻게 빠르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Inline Cache 라는 방식을 사용해서 이를 해결했고, 자세한 내용은 다른 포스트에 (광고) 정리하겠다. 엔진마다 다른 방식이라서 직접 적용하기엔 다소 애매한 팁이었으나,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꺼리였다.

Mozilla 의 엔지니어 분의 발표도 좋았다. 기술적인 내용은 아니었고, 개발자가 새로운 것을 만들때 무엇을 생각해야하는가 에 대한 일종의 철학(?)적인 발표였다. Make Website, Not Apps 라는 제목의 발표였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앱을 만들지 말고 웹사이트를 만들어 기록을 남기자는 고전적이면서도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를 던져주었다. 느끼는 것이 많았다.

Http/2 서버 푸시 같은 다소 미래(?)의 기술이라거나, 엔터프라이즈 (우리나라로 치면 SI) 에서 개발을 할때 얻은 노하우들도 유익했다. 페북용 챗봇을 만드신 분의 발표도 재밌었다. 최근 나도 비슷한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적용할만한 깨알같은 노하우가 많았다. 원래 발표같은데서 필기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님에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요것도 따로 포스트를 마련해보겠다. 광고임

라이트닝 토크

라이트닝 토크는 2일차 오후에 6명의 개발자가 5분씩 이야기하는 섹션이었다. 발표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걸 이야기하는 편한 자리? CSSConf 의 마지막 발표때 주먹으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면, 이번엔 망치였다.

굇수가 만든 리듬게임 스샷

이런 웹 기반 리듬 게임을 만들기도한 친구가 첫 발표자로 나섰다. 타이에서 왔다며 발표를 시작한 이 친군, 많이 봐줘도 대학생 정도되어 보였다. 웹 기반의 미디 악기를 만들고, 공연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앱의 UI 도 무척 예뻤고 완성도 또한 엄청났다.

웹 기반 미디 악기

인상적인 발표 중 또 하나는 UIlicious 라는 UI 테스트 프레임워크를 만든 대학생. UI 테스트 코드는 필연적으로 지저분해지고 유지보수가 힘든데, 이런게 답답해서 자기가 만들었다고 한다.

I go to "http://www.google.com"
I enter "lolcats" in "Search"
I see "Lolcat - I Can Has Cheezburger?"

실제 코드는 이렇게 작성하면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여자 개발자를 거의 만나보지 못했는데, 학생이 이정도 수준의 프레임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놀라웠다.

UIlicious

프로덕션 레벨로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SO WHAT?

실제 발표 내용에 대한 간략한 정리는 여기까지로 마무리하고, 정리를 해보자. 나는 이 3일동안 어떤 결핍을 느꼈다.

1. Developer Community

나는 개발자의 성장은 온전히 커뮤니티의 몫이라고 믿는다. 대학이나 회사에서 가르칠 수 있는 몫은 아주 크게 제한되어 있고, 특히 우리나라 특유의 상하 구분이 심한 조직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처음 개발을 한 커뮤니티안에서 일종의 취미 활동으로 시작했다.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고 좋아하는 교양 수업을 듣는 느낌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두세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로는 주로 stack-overflow 에서 궁금한 걸 찾아보거나, google 검색을 통해 해외 개발자들의 포스팅을 따라하면서 성장했다. 회사에서 배운 것이 없냐고 하면 물론 그렇진 않다. 스케일이 있는 개발은 아무래도 그런 환경에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배워야 하는 동기도 확실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실제 액션 플랜은 역시 블로그나 검색을 통해 세우는 일이 많았다. 한글로 검색하는 일은 열에 한번 있을 정도고 (한글로 찾아도 영어 아티클이 더 많이 나온다) 영어 검색으로 영어 아티클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해하지말자. 우리나라 라고 커뮤니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뛰어난 개발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커뮤니티라고 부를 만한 것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도 사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티는 온라인 커뮤니티 만을 뜻하는 것이 당연히 아니고, 오프라인을 비롯한 사람들의 연결고리 그 자체를 말한다. 밋업, 컨퍼런스 등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 것은 확실하지만 여전히 그 수가 부족하고, 특히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공부하고 함께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를 나는 많이 보지 못했다. 스타트업 열풍임에도 그 바람의 원천인 개발자들의 성장에 우리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Github 의 Electron 은 인턴 개발자에게 맡긴 프로젝트였고, Lightning talk 에서 인터렉티브 악기를 만든 어린 친구는 뛰어난 개발실력 만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에 대한 열정 또한 갖추고 있었다. 또 어떤 학생들은 UI 테스트 스크립트가 별로라며 자기가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이 일련의 모습들을 한국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다. 돈이 되는 프로젝트와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를 나누고 투자와 성장에만 관심을 갖고, 열정페이는 주지만 열정에는 돈을 주지 않는다. 열정 없이 커뮤니티는 성장할 수 없고, 커뮤니티가 없이는 뛰어난 개발자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2. Global Standard

요즘 중국 열풍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중국의 IT 정책은 매우 폐쇄적으로 Google 같은 회사도 두 손 들고 나갈 정도고, 많은 회사들의 중국 도전기 들을 읽어보면 참으로 눈물겹다. 얼마전에 있었던 구글 지도 반출 관련된 논란에는 NHN 을 중심으로 "아니 중국 봐라 우리가 뭐가 못나서 나 퍼줘야 하나" 하며 소리지르는 꼴이 참 보기 흉했다. 내가 왜 이것을 보기 흉하냐고 하면 구글 지도 반출 반대에 과연 어떤 명분이 있었나 하는 것이다.

아니 지도 서비스 하는 회사가 얼마나 있다고? 님이나 공정하게 하세요

국내 산업 보호 어쩌구 한다지만, SDK 레벨로 개발자를 지원하는 회사가 국내에 NHN 과 Kakao 를 제외하고 어디에 있나? 진정 스타트업과 개발 커뮤니티, 생태계를 지원한다면 국내에서만 쓸 수 있는 지도 SDK 를 지원하는 (이미 돈을 잘 벌어들이고 있는) 모 회사들을 위해 국가적으로 보호할 이유가 전혀 없다.

중국은 모든 유럽 국가의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따라서 모두가 탐내는 매력적인 시장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연일 들려오는 알리바바의 OO절 소식이라거나, 잘나가는 회사, 투자 규모에 대한 기사를 읽어봐라. 굽히고 들어갈만한 가치가 있는 시장이고, 외국인 니들이 안들어와도 될 만큼 자체 생태계도 뛰어나다.

반면에 우리나라가 그만큼 매력이 있는 나라인가? 우리는 문을 닫기보다는 통과해가는 트래픽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 많을 나라다. 중국이 폐쇄적이라면 우리는 브릿지가 되어야지 소중국이 되어서 자존심 부릴 입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빠르게 흡수하고, 로컬라이제이션을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이 대한민국의 과거였고 아마도 미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웹 표준을 지키는 커녕 아직도 ie6, 7 을 버리지 못하고, 알수 없는 대한민국 특수 결제 스탠더드를 만들어내고, 한국형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투자금을 낭비하는 짓거리는 이제 좀 그만해야 할 때가 된거 아닌가. 머지않아 한국형 한국 이라는 말도 나올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이미 많이 뒤떨어졌다. 오늘 돈 버는 것은 무척 중요하지만, 내일 돈을 계속해서 버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이상한 고집에 휩싸여서 한국형을 내세우는 일은 이제 좀 그만하자. 몇 안되는 회사들을 위해 모두가 희생하는거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하나.

3. Gender Equality

요즘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여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심각하다. 여전히 공대에는 남자가 대다수이고, 어문/사회계열에는 여자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디자인 팀의 리더는 항상 남자인데 왜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여자인지 모르겠고, 남자 개발자만 개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진데 나도 여자랑 일하고 싶다고! 컨퍼런스 성비는 9:1 을 넘기 힘들다.

CSStricks 의 필진 중 한명이기도 한 Sarah Drasner

play.node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가자 성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지만 (그래봐야 9:1 에서 8.5: 1.5 정도) 발표자는 대부분이 남자이다. "이공계는 대부분 남자가 가니까 힘든 일을 많이 해서 연봉이 높은게 당연한거야 빼액!" 하는 친구들도 간혹 보이는데, 반대로 왜 이공계는 남자만 진학하는지 궁금해 하진 않는다. 이미 남녀 수능 성적 추이를 보면 여자가 남자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앞지른게 사실이지만, 이공계에서는 여성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바꾸기위해 Girls on Tech 같은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하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몇개 있긴 하다. 가본적이 없어서 알수가 없지만;; 그다지 활발하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cssconf, jsconf 에서 놀란 것은 발표자의 30-40% 가 여자라는 점이었다. 일부러 의도해서 구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뛰어난 여자 개발자의 발표가 많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인사이트를 얻은가 여자 개발자의 발표였다. 사실 개발 분야에서 성별이 중요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 만큼, 이게 그렇게 어색한 일도 아니다. 남자들만 수학을 잘하고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조금 비교가 이상하긴 하지만 여자들만 섬세하고 꼼꼼할 리가 없다.

물론 여전히 남자가 대다수이긴 하다

남자 디자이너도 필요하고, 여자 개발자도 필요하다. 태어나기를 개발자로, 디자이너로 난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사냥이나 격투기 같이 신체적인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젠더 고정관념을 극복하지 못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번 네이버 D2 에서 발표한 연사중 한분이 여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였는데 발표도 재밌고, 그 과정도 흥미로웠다. 소재가 너무 연예인쪽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남자들은 연예인 대신 게임 이나 야동 을 골랐겠지.

나는 아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조금 아니 많이 늦은 것 같다. 나는 이번 컨퍼런스를 경험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느꼈다. 개인으로서의 성장에 대한 욕심, 커뮤니티에서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개발자들에 대한 부러움, 한국형 개발을 벗어나지 못하는 괴로움, 성 역할을 벗어나서 다양한 사람들과 여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 등 많은 것들이 울림으로 남았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어디에 있는가. 개발자로서 대성하는 것이 내 목표였던 적은 한번도 없지만,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즐겁게 개발하고, 멋진 개발자와 함께 배운 것들을 공유하고, 또 함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가고 하는 것들이 중요하지, 어디 회사에서 무엇으로 돈을 버는가 하는 것은 다 부차적인 일이 아닐까? 스타트업이라서 여유가 없고, 혹은 대기업이라서 못하고, 이러한 프레임을 벗어나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할때가 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인턴 과제

지금은 Slack, Atom 등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Electron 은 한 인턴의 과제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테스트 코드가 싫다고 UIlicious 라는 프레임워크를 시작한 것은 한 여학생이다. jscafe (불확실) 라는 커뮤니티는 이제 jsconf.asia 라는 커다란 행사로 성장했다. 재미로 GPU 를 써보려고 수학 공식을 3D texture 로 표현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연주를 좋아해서 자기만의 악기를 웹 브라우저로 만든 친구까지 있었다.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났다.

코딩 교육을 의무 교육으로 할건가 말건가 하는 것이 진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가? 재능은 커뮤니티의 인정과 애정 속에서 자라난다. 적어도 개발 분야에서는 혼자 1등을 하는 것 만큼이나 함께 망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커뮤니티가 개발자를 키우고, 그 개발자들이 다시 커뮤니티를 성장시킨다.

It's all about community

얼마전 이해진 nhn 의장은 대대적으로 기술기반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의구심이 든다. 기술은 기업에서만 성장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한명의 개발자가 자신만의 인사이트로 씨를 뿌리고, 이를 커뮤니티가 함께 물을 주고, 보살피며 점차 꽃을 피우게 된다. Node.js 가, Github 이, Stack Overflow 가 모두 그렇게 성장했다. 회사는 망하면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커뮤니티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밖에 없다 개발자는 수단일 뿐이지

io.js 와 node.js 의 분열과 결합의 역사는 커뮤니티가 어떻게 발전하는가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커뮤니티다. 개발은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관심이 필요하다. 재능있는 사람을 돕고, 그 사람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주고,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우리는 만들어야 한다.

딱히 우리나라가 엄청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컨퍼런스가 열리고,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다만, 더 멀리 바라보고, 지원을 해줘야 할 필요는 있다. 부러움과 질투심을 느끼며 비행기에 오른다. 겸손함을 배웠고, 욕심이 생겼다.